정들었던 보드게임 모임을 나오면서

나온지 한 6개월은 지났으니깐…

어느 한 보드게임 모임에서 사소한 일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 모임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떠났습니다. 그래도 정들었던 사람들 많았던 곳인데…

별미네 보드게임 모임이 뜸해질 때쯤, 작년 4월 염창역 근처에 보드게임 소모임에 뜨더군요. 그 모임도 카페 모임으로 시작해서 꿈에 그리던(?) 아지트를 만들었지만, 인원 참여가 많지 않아서 고민 중에 카톡 모임에서 소모임으로 공개한 모양입니다. 제가 나이가 있고 하니 모임 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나이 제한이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죠. 무엇보다 퇴근 동선이 완전히 겹처서 집 가는 길에 자연스럽게 놀다 가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퇴근길에 잠시 들렀는데 인원도 많이 모였고 사람들도 다들 좋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아나크로니, 트릭케리언을 자주 돌렸었네요. 아예 게임을 아지트에 두고 여러 사람들에게 소개했습니다. 트릭케리언이 설명도 길고 무거운 게임인데도 자주 돌아갔습니다. 게임 테마가 좋아서인지 이 모임에서 반응이 너무 좋았고 모임원들도 저보고 같이 하자는 이야기를 자주 해줬네요. 룰 설명도 여러 번 반복하다 보니 룰 헷갈리는 일은 이제 전혀 없고 아카데미 확장도 추가해서 돌렸는데 저도 너무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얼마 뒤 학교 선생님들이 모임에 몇 분 오셨는데 다들 게임 이해도 잘하고 게임도 너무 잘합니다. 어느 시점부터 모임 인원이 부쩍 늘기 시작했는데 개인적으로 선생님들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잘하고 친절하시고 모임도 자주 나오시니깐 다들 좋아했을 겁니다. 이분들 좋아서 저도 보드게임을 선물로 준비해서 주기도 하고 마이티도 가끔 돌아서 마이티 전략을 필사해서 편지처럼 주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평범한 일요일 모임 참석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모임장이 갑자기 저에게 연락처를 달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신뢰가 쌓여서일까? 뭐 때문이지? 궁금했는데 이런 부탁을 합니다.

‘오늘 아지트 오픈하는 운영진이 몸이 좀 안 좋아서 오후 6시쯤 일찍 마감하려고 한다. 그러니 그것에 맞게 일찍 모임을 끝내는 분위기를 같이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하… 지금 생각해 보면 저에게 이 부탁 전화를 한 게 조금씩 마음이 틀어진 시작점인 거 같습니다. 그냥 사정이 생겨서 오후 6시에 아지트 마감한다고 공지하면 될텐데 내가 끝내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걸까? 조금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운영진이 몸이 안 좋으시다고 하니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그래도 기분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전화로 이야기 한 거처럼 오후 6시쯤 맞춰서 파하는 분위기를 만들었죠. 마지막 게임을 마치고 다들 나가는 모습을 보고 저는 귀가하러 버스 타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임장한테 또 전화가 옵니다. 오후 6시에 모임을 끝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습니다. 그런데 그 전화 받고 정말 기분이 나빴습니다. 아지트 오픈하는 운영진이 따로 있으니, 모임장이 운영진에 확인 전화를 하면 될 일이지 운영진도 아닌 그냥 일반 회원인 나에게 이렇게까지 확인 전화하는 게 맞나? 난 이런 일 하기 싫은데 말이죠.

그 일 이후로 어색한 동행이 계속됩니다. 모임 분위기 좋고 마음에 들었지만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모임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모임장과 같이 게임 하기도 싫어졌습니다. 점점 안 좋은 모습이 눈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모임 운영 정책도 모임장의 의도가 반영된 거 같아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런 전화를 나에게만 했을까요? 다른 모임 인원이나 운영진을 통해서도 그런 운영방식을 요청했겠죠.

항상 일요일 모임은 6시에 종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안 그럴지는 몰라도 당시 제가 받은 느낌은 아지트가 열려있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운영으로 보였습니다. 모임 제목이 ‘일요일 깔끔하게 18시까지’란 모임 제목을 달기도 했는데 뭐가 깔끔하다는 건지 어처구니없는 제목을 보고 있자니 짜증 나고 모임 중간에도 모임 인원들과 같이 미리 약속을 한 건지 볼링 치러 나가버려서 썰렁한 분위기 만들어 한 게임만 더 하고 나가야 하는 분위기 조성하고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이어갑니다.

그러던 어느날 전체 카톡으로 게임 정리를 너무 대충 했다, 두루마리 휴지를 제 위치에 걸어놓지 않았다… 등을 이야기하며 제대로 정리 안 하면 경고 조치를 하고 강퇴를 하겠다고 공지합니다. 무슨 시어머니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지트에 놔뒀던 게임을 가지러 갈 생각으로 마지막 모임에 참여했습니다. 그래도 선생님들과 같이 듄-봉기를 재미있게 즐겼습니다. 정들었던 사람들 기억에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이 모임은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죠. 군소리 없이 조용히 탈퇴 버튼 눌렀습니다.

HJ쌤 같이 게임하고 싶습니다.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