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공부하기엔 늦은 시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원 졸업하고 직장 들어간 게 벌써 14년 전이기도 하니깐요. 그래도 옛 생각이 나서 가끔 수학 책을 펼쳐보곤 합니다. 그러다가 유튜브에 수리물리 강의가 공개되어 있길래 보게 되었고 어느덧 수리물리 한 학기 강의를 다 들어버렸네요. Arfken 수리물리인데 정말 어렵고 깊은 내용이 담겨있는 책이죠.
그런데 유튜브의 신기한 알고리즘으로 이현 강사님의 윤리 강의가 추천 영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와!… 이렇게 옛 생각에 잠시 잠겨 봅니다.
저도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인강이 없던 시절이라서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면 유명 학원을 돌아다니면서 인기 강사 수업 듣기 바빴었죠. 나름 방학 때는 시간표를 잘 짜서 오전 9시 ~ 오후 9시 단과 수업으로 꽉꽉 채워서 방학 때가 더 바쁜 생활을 했던 거 같습니다. 하루에 3군데씩 학원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들었는데, 학원 중 하나가 노량진 정진학원입니다. 거기에 사회탐구영역 통합 강의 비슷한 게 개설되어 그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윤리 이현 선생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와 이현 선생님의 수업은 정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수업을 너무 재미있게 하셔서 푹 빠져서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윤리에선 동양 사상/서양 철학/한국 사상에 대한 내용이 어려운 내용이 많고 중요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걸 너무나도 적절한 예제에 쉬운 강의 그리고 선생님의 지식의 깊이와 강의 열정에 감탄을 하게 됩니다. 나중에 고3 때도 시간 내서 단과로 윤리만 따로 들었으니 총 2번 수업을 들었죠. 바로 그 이현 선생님의 강의가 유튜브로 고스란히 남아있고 20년도 더 지나서 추천 영상으로 나와서 추억 삼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옛날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할!
그래서 폭풍 검색을 하였는데 이제 강의는 은퇴하시고 ‘우리교육연구소’라는 재단을 설립해서 미래를 위한 교육 정책 연구를 하고 계시네요. 선생님 정말 그립습니다.
…
…옛 생각을 하며 사실 떠오르는 선생님이 한 분 더 계십니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죠 지금의 제가 있게 된 토대가 된 선생님이죠. 서울학원에서 수학 과목을 강의하신 지성구 X반 선생님입니다. 제가 수학 과목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지성구 선생님의 강의라 생각됩니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언급하긴 했는데 이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저는 왜 수리물리 책을 펴서 보게 되었을까요…?
형 따라서 수업을 한번 듣고 나서 저도 본격적으로 평일 단과 수업을 수강하게 됩니다. 고1 2학기쯤부터 수업을 들었는데 아마 아시는 분은 아실 겁니다. 엄청 무섭고 엄하신 분이었지만 너무 열정적인 강의에 빠져들 수밖에 없는 분위기… 뭔가를 물어보시면 대답도 크게 해야하고 수식도 전개할 때 같이 따라서 열심히 읽던 기억이 나네요. 인터넷 어딘가엔 녹음파일이 남아 돌아다니기도 하더라고요.
예비 고2 때부터 주말반도 같이 수강하게 됩니다. 주말반에선 자체 제작하신 Integral 수학교재의 문제풀이 위주였는데 토요일 늦게까지 수업 듣고 다음날 일요일 아침 수업 전까지 풀이를 정리해서 빼곡히 그 책에다가 풀이를 적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제로 회초리를 들고 벌을 주셨죠. 전 너무 광신도(?) 였기 때문에 맞은 일은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깔끔하게 정리하려고 노력했죠. 그리고 주말반에서는 한 달마다 시험을 봐서 70점이 넘어야 다음 달 수강증을 끊을 수 있는 증을 주셨고 그게 있어야 주말반을 계속 수강할 수 있었습니다.
주말반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첫 번째 시험 95점, 두 번째 시험 95점, 세 번째 시험 90점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다음 주가 되고 수업 들으려고 앉아 있는데 수업하시러 올라가시기 전에 제 자리로 오시더니 제 목덜미 쪽을 잡고 이마를 책상에 퍽 밀더니 “너 정신 안 차릴래? 다음번에 100점 맞아야 한다. 알겠냐?” 이러고 가신 기억이 생생하네요. 다음 시험은 미친 듯이 준비해서 100점을 받고야 말았습니다.
결국 주말반 수업을 끝까지 완주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좋은 기억보다는 엄청나게 아쉽고 슬픈 기억이 더 많았네요. 바로 그날이 지성구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 날이었기 때문이죠. 평소 편투통이 있으셔서 앞으로 강의를 오래 못할 거 같다는 말씀을 가끔 하셨는데 바로 그날이 온 것이죠. 평일반에서는 이미 마지막 강의 인사를 하셨고 주말반 강의가 정말 마지막 남은 강의였죠. 그날따라 거짓말처럼 눈이 많이 오던 날인데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저도 좀처럼 학원을 떠나지 못한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결국 수많은 학생들과 같이 내려오고 차 타고 가시는 모습을 함께 했습니다. 그게 지성구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이었네요. 선생님 정말 그립습니다.
옛 보관 통을 뒤져보다가 서울학원 강의 시간표의 지성구 선생님의 사진을 오려다가 Integral 수학에 붙여놓고 보관했던 기억이 나서 찾아보니 아직도 온전히 몇 장 남아있네요. 나중에 수학교재 사진을 찍어다 올려볼 까 합니다.